천진난만한 아이들
막 집을 나서는데 집 앞 골목 앞에서 군데군데 비누거품을 묻힌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앞을 휙 지나가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곧이어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몰려오더군요. 가만히 보니 거무튀튀하게 털이 변색된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아이들이 에워싸고 길에서 목욕을 시키는 중이었습니다. 누구네 집 강아지냐고 물으니 주인 없는 떠돌이 개라고 하더군요. 물이 없어서 어쩌냐고 하니까 다른 친구가 집에서 물을 가지고 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뒤에 조그만 아이 하나가 낑낑거리며 대야에 물을 받아 오고 있더군요. 녀석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동네를 떠도는 불쌍한 강아지가 너무 더러우니 목욕을 시켜주자고 입을 맞춘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곤 골목에서 누구는 비누를 가지고 오고 누구는 물을 길어오고 또 누구는 강아지를 잡고 있고 그렇게 역할을 나누었던 게지요.
집 없는 강아지를 목욕시키자는데 뜻을 모은 꼬맹이들의 그 막무가내식 동심에 아득해져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하는 양을 한참 지켜보았지요. 척 보기에도 아이가 길러온 물로는 어림도 없어보였지요. 조그만 녀석이 물을 뜨러 집에 까지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아주 잠깐 우리 집 욕실을 개방해 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저희들끼리 계획하고 시작한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든지 저희들 힘으로 해보면 느끼는 게 더 많지 싶기도 하고 예슬이 혜진이 사건 이후 아이들에게 비친 낯선 어른들의 모습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괜시리 경계심 많은 어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귀찮아서이기도 했습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예슬이 혜진이를 유혹했던 것이 바로 “우리 집 강아지가 아프다”는 말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나 새삼 부아가 나고 슬펐습니다. 정말, 다시는, 진실로 저토록 순수한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병든 어른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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