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신닷컴 대표 강성태 군

2me4you 2008. 11. 5. 14:07

만인의 친형으로 발 벗고 나선 일등 공신    

공신닷컴 대표 강성태 군


“1. 후배들에게 무조건 솔직히 한다 2. 어떤 상황이라도 희망을 준다 3. 어디에도 간섭받지 않는다 4. 우리도 배우는 학생임을 기억 한다 5. 1번을 다시 본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모르면 간첩이라는 공신닷컴의 기본 운영원칙이다. 공신닷컴(www.gongsin.com)은 대한민국 초절정 브레인, 수능 석차 전국 상위 1%들이 모여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은밀한 공부 비법을 알려주는 무료학습사이트다. 이 범상치 않은 원칙을 세우고 사이트를 맨 처음 만든 이가 바로 강성태(26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 군이다. 제 공부하기에도 바쁠 아쉬울 것 없는 젊은이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형제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되다

사진으로만 보던 성태 군은 키가 무척 컸고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지난 2월까지 토요일 오후 MBC에서 방영한 <공부의 제왕> 촬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합숙을 했던 그는 수험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신경을 많이 써서인지 얼굴이 꽤나 수척해 있었다. 그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재미와 열정을 가지고 동생과 함께 동영상 강의를 올리면서 시작한 일이 《공부의 신》이라는 책을 내고 공중파에까지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제대 후 복학을 하고 입시제도에 대한 토론수업을 하던 성태 군은 이른바 수능, 내신, 논술을 일컫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입시의 지옥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후배들을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공부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를 거쳤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장남으로 늘 형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그는 후배들에게 친형 같은 사이트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힘을 실어 준 것이 바로 같은 학교에 입학했던 친동생 강성영(22) 군이었다. 성영 군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학원설명회에 참석했다가 그저 그럴듯한 말로서 학부모들을 현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형의 생각에 동참을 했다. 그 자신 역시 공부를 하는데 가장 큰 도움과 조언을 준 사람이 형이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본격적으로 기숙사의 한구석에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동생은 동영상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를 사는데 장학금으로 받은 돈을 선뜻 내놓았고, 뜻에 동참하는 친구들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형제가 의기투합하면서 다양하고 화려한 이력을 가진 7명의 친구들이 합류해 수능을 얼마 앞둔 2006년 가을, 고3의 악몽을 겪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한줄기 빛을 주는 공신 사이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성태 군은 사이트를 처음 구상한 건 자신이지만 동생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라며 동생 성영 군에게 큰 공을 돌렸다. 함께 1기 공신으로 활약하던 성영 군은 지금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고 한다. 지금 공신사이트에는 1기에 이어 2기 공신들이 합류해 활동을 하고 있다.

 

 

공부를 새롭게, 공부를 신나게!

경북 점촌에서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온 그는 손목이 아프도록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요리 동아리, 선도 부장,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고2 때 과목 중 하나에서 치명적인 성적을 받는 경험을 하고는 자신의 공부법에 문제가 있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고3이 되어 다급해진 그는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직면하고 1년 동안 스스로를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며 공부에 매달렸다. 그 결과 수능 400점 만점에 396점이라는 고득점을 얻는 엄청난 결과를 이뤄냈다.

“공부에 왕도는 없지만 요령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방법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하기 싫은 공부지만 몰입을 하다 보면 그 속에서 즐거움도 맛볼 수도 있고요. ‘공신’이라는 이름도 지금은 공부의 신, 즉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원래는 공부를 새롭고 신나게 하자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었어요.”

자동차를 좋아해 기계항공공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공신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공부법은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각기 다른 상황을 가진 학습자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인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진로도 교육공학으로 수정했다. 공신의 운영을 통해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되면서 이러한 데이터를 공학도의 분석력을 토대로 좀 더 체계화 하고 싶어서다. 

 

언제나 처음처럼

범람하는 입시정보들 사이에 공신사이트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상업적으로 다가오는 기업체의 제휴를 거절하는 데 있다. “동생이 내놓은 장학금과 책의 인세, 학습보증금으로 낸 금액을 다시 돌려받지 않고 기부하는 일부 학생들의 금액 등으로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때론 유혹을 느낄때도 있어요. 그러나 늘 초심을 지키려고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하며 학교까지 휴학하게 되었지만 공신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면서 새삼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는 좌우명을 늘 가슴에 담고 있다는 그는 사이트에서 도움을 받던 수험생이 다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공신으로 다시 돌아올 때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숙사의 한 구석에서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교수님들의 승인을 얻어 서울대학교 내 공학연구소에 떡하니 입주할 만큼 주위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강성태 군. 사이트의 불안정과 접속 폭주로 수시로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에 밤잠을 못 이루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 올수 있었던 것은 이를 통해 배우고 얻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입시지옥이라는 터널에서 괴로워하는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친형의 역할을 자처해 발 벗고 앞장 선 그가,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모습에서 각박하다는 이 경쟁의 시대에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보는 듯해 참 기분이 좋았다. 학창시절 까불고 산만한 학생이기도 했지만 군복무 시절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성철스님의 장문의 결혼식 주례사를 보고 가슴에 와 닿아 출력해서 읽고 또 읽었다는 이 젊은 청년의 앞날에 축복된 길이 열려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