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절대음감을 가진 성악도 이소영 양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하나가 모자란 사람에겐 부족한 부분을 채우라고 특별한 선물을 내린다고 했다. 그 말을 반증이나 하듯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던 아이에게 신은 특별히 소리에 민감한 귀를 주셨다. 바람소리, 물소리, 웃음소리, 심지어 공사장의 망치소리까지 음으로 인식하는 이소영(26) 양. 우린 이런 이들을 가리켜 ‘절대음감’이라고 부른다. 음이라곤 해야 기껏 ‘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의 음계 밖에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녀는 분명 신비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자신 앞에 놓인 엄청난 역경을 신이 주신 축복으로 받아들여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를 만나보았다.
눈물로 뒤엉킨 가족의 사랑
선천성 백내장과 소안구증.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받은 진단이다. 때문에 핏덩이 때부터 수술을 받기 시작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4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시력은 좋아지지 않았고 사시까지 가지고 있어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어려웠다. 보통의 경우라면 사시는 수술로 고칠 수 있었지만 소안구증을 가진 경우엔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사물을 흐릿하게 바라보게 할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거리까지 멀어지게 만들었다. 어린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만 부모님과 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비록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언니였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동생을 항상 최고라고 생각해주는 언니였기에 그녀에겐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 가정에 위기가 닥쳤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남편 없이 성치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막막함에 하던 일까지 잘 풀리지 않아 집이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자 그토록 꿋꿋했던 어머니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힘든 세상 다 같이 죽자며 음료수에 약을 타 두 딸을 부둥켜안고 울기 까지 했다.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더 이상 보지 못할 뻔 했던 이 순간, 소영 양의 살고 싶다는 한마디가 어머니의 정신을 퍼뜩 들게 했다. 끝없이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만 같은 이들의 불행은 이 사건 이후 달라졌다. 희망은 찾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시 한 번 힘을 내 잘 살아 보자 다짐한 세 모녀는 그 후 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다시 찾은 가족에 대한 끈끈한 사랑 덕분인지 묘하게도 마음은 편해졌단다.
한국종합예술대학 합창지휘과 수석합격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세 살 때부터 배우지도 않은 동요를 실로폰으로 두드렸다는 이소영 양. 피아노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무슨 노래든 듣기만 하고 연주를 했다니 어찌 소문이 나지 않으랴. 다들 음악 신동이 났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피아노 학원은 오래 다니지 못했다. 체르니까지 진도가 나간 후부터는 줄곧 혼자서 연습했다. 이런 노력과 음에 대한 천부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인천예고에 입학한 소영 양. 그러나 그 후 한국종합예술대학에 원서를 넣었으나 낙방했다. 그리고 이어진 방황…. 그러나 온가족이 절망에서 빠져나온 그 사건이 있은 후 다시 음악과 진로에 대해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3년 후 같은 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 수석합격이라는 기쁨이 찾아왔다. “합격을 하더라도 등록금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4년 장학금의 혜택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가슴 벅찬 순간을 떠올리면서 수줍게 웃던 그녀. 그러나 바로 그해 오른쪽 눈이 완전 실명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희망은 기적을 낳는다고 했던가? 병원에서 낙담했던 왼쪽 눈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작년 2월 이후에는 통증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기도의 힘이라고 믿는다는 그녀. 2005년은 그녀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해가 되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부르는 희망의 노래
수석합격의 영광을 얻은 후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절대음감, 피아노 뒤로 치기 등 일상에서 늘 보아온 가족들에겐 그저 그런 솜씨였지만 이를 처음 본 새 아버지의 눈에는 심상치 않은 솜씨였던 것. 새로 얻은 딸 자랑을 하고 싶었던 아버지 덕분에 <TV 특종 놀라운 세상>이라는 방송에 출연까지 하게 되었다. 첫 방송이 나가자 각 방송사에서 연이은 출연 요청이 왔다. 그 뿐인가? 작년 말에는 신문에까지 대서특필이 되면서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덕분에 학생 신분으로 감히 생각지도 못한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가곡을 부르는 행운까지 얻었다. 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와 지금까지의 삶을 담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멀지만 소영 양은 지금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그녀는 합창지휘과에서 성악과로 전과를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녀. 그녀에게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물었다.
“지금까지 날 버리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엄마, 학교에서 내 전용으로 확대 복사된 악보를 준비해주시는 분, 낯모르는 제게 선뜻 눈을 기증해 주겠다고 찾아오신 분, 저를 도와주시는 많은 선생님들, 친구들…. 이런 분들이 계신데 세상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나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뻐근해왔다. “우리 소영이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라 기증을 받을 수 없기도 하고, 안구기증은 산사람에게서 받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마음만 받겠다고 했지만 정말 고마운 분이셨지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니의 말이다. 그리고 두 모녀는 한 번 더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이사를 하면서 연락처를 분실해 할 수 없었다며 마음 무거워했다.
소영 양의 왼쪽 눈 교정시력은 0.2다. 그 눈으로 외국 곡을 연습하는데 필요한 사전의 깨알 같은 글씨와 씨름하고, 인천에서 서초동에 있는 학교까지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한다. 출구와 가까운 곳에서 내리려면 어느 지점에서 타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외우면서…. 피아노 연주도 악보를 통째로 외워서 한다. 절대음감이 그녀에게 주어진 천부적 능력이라면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필살기다. 그녀는 훌륭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 더 나아가 음악을 지도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향해 오늘도 사랑과 희망이라는 닻을 달고 세상 속으로 힘찬 걸음을 내 딛는다.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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