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정원 초방
신경숙 님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
들쥐 프레드릭 이야기다. 길고 긴 겨울을 위해 들쥐들이 열매와 짚을 모을 때 유독 프레드릭만 무언가 다른 것에 골몰하고 있다. 친구들은 그런 프레드릭을 보고 왜 일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프레드릭은 추운 겨울을 위해 햇살을, 잿빛 겨울을 위해 색깔을, 지루한 겨울을 위해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대답했다. 들쥐들은 그런 프레드릭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길고도 지루한 겨울이 찾아왔을 때 친구들은 프레드릭을 찾아간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행복해하면서 프레드릭을 멋진 시인이라고 했다. 이 동화 속 주인공 프레드릭처럼 살고 있는 신경숙 씨. 현실 속에서 꿈처럼 아름다운 마법을 펼치고 있는 그녀를 만나보자.
열린 문화 공간
1990년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어린이 그림책 전문서점 1호’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림책 정원, 초방>의 문을 연 신경숙 씨. 대신동 어느 뒷골목에 <초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작고 수수하게 시작했으나 단순이 책을 파는 공간으로만 꾸미지 않았다. 앞으로는 똑같은 책이라도 꼭 그 곳에 가서 사고 싶은 곳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 자체가 전시물처럼 되는 책방, 책이 전시물인 갤러리처럼 꾸미려고 노력했다. ‘서점’이 아닌 ‘정원’이라 이름붙인 이유도 단지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누군가가 애써 가꾸고 키운 공간에 구경하러 오기도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때론 쉬어가기도 하는, 그렇게 함께 나누는 다양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초방은 그 가치를 더욱 빛내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간 어찌 힘든 일이 없었을까만 정성들여 가꾸고 물을 줘오는 동안 어느덧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 이젠 기발한 전시회는 물론 매주 토요일 아주 특별한 ‘초방 벼룩시장’이 열릴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문화 공간이 되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나누고 싶은 마음
대학교에 나니는 쌍둥이 딸을 둔 엄마로서 먼저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책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후배 엄마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그녀는 그림책을 ‘아름다운 학교’라고 여긴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 아름다운 동화와 함께 하기 때문인지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 얼굴이 참 맑게 느껴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뜻밖에도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의 열매를 맺으려고 태어났는데 과연 나는 내 열매를 향해 가고 있는지 늘 생각합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젊은 날 읽었던 퇴계 선생의 ‘삼가 하고 끊임없이 배우면서 그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하며, 테레사 수녀의 “나는 하나님의 작은 몽당연필입니다. 사랑과 진정을 갖고 하는 일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라는 말씀을 부족한 자신의 가르침으로 삼고 있다는 신경숙 씨. 앞서간 성현들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자신이 맺은 열매를 아낌없이 나누며 살고 싶다는 그녀의 모습이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감동이란 느끼고 움직이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고 확신하는 그녀.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알려주기보다 하나를 보더라도 거기서 느낀 감동으로 더 많이 보고, 알고 싶게 하는 열정을 심어주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사실 책이 책 자체만으로 존재한다면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한 번을 만나도 느낌이 중요한 사람처럼, 책에서 받는 느낌이 중요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찾아온 이들이 좋은 그림책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감동적인 책’이라고 대답한다는 그녀. 그러나 감동을 느끼는 부분은 저마다 제각각이라 그 사람에게 꼭 맞는 책을 골라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책 선물은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격은 어떤지, 취미는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골라야 정말 감동을 주는 선물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한다. 그녀가 말하는 감동이란 ‘느끼고 움직이는 것’이다. 책에 담겨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느껴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 즉 자신이 간직한 열매를 찾아 내 아름답게 피워내는 것이다. 그 어떤 좋은 말도 생활 속에서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과 닿아있는 것 같아 숙연함이 전해져 왔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볼로냐어린이국제도서전> 심사위원을 맡았을 정도로 그림책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그녀지만, 그저 나름의 기준과 취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겸손히 말하는 신경숙 씨. 세상에는 한 권의 책으로도 큰 축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한편, 커다란 도서관으로도 여전히 배고픈 사람이 있다며,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축복을 축복으로 인식하면 더 많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축복메시지로 남겨주었다.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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