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침반, ‘신기료 아저씨’ 조효선 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자신은 변해도 부모님은 항상 그대로이길 바라는 철없는 자식의 마음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엔 늘 변함없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것들이 있다. 고향 집의 버스정류장, 친구들과 뛰어놀던 학교운동장, 내가 잘 가던 학교 앞 분식집 등등 왠지 사라져버리면 가슴 한쪽이 서늘해질 것 같은 그런 곳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바쁜 현대의 삶속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기에 세월가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시간이 갈수록 더 소중한 곳이 된다. 서울의 한 복판, 행정구역상으론 동대문구 이문1동. 이곳에서 도시의 신기루처럼 아련한 모습을 간직한 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기료장수 조효선(63) 씨를 만나보았다.
외대 앞, 전철역의 한쪽 계단을 내려와 철로 변 담장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큰길에서 이사 온 구두병원>이라고 쓴 유리문이 있는 곳. 집과 집 사이 틈새를 이용해 자그마하게 마련된 공간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구두에서부터 우산, 가방, 열쇠 등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생기면 이곳을 찾는다. 강산이 바뀌어도 두 번은 넘게 바뀌었을 시간동안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로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조효선 씨. 그가 지키고 있는 기찻길 옆 작은 구두수선 집에는 언제나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제 고향이 충준데요. 고향에서 농사지을 때 <중류사회>라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구두수선으로 저축하고 자립한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아 이 일을 시작했지요. 어릴 적 나무 위에 오르다 다친 발 때문에 택한 일이기도 했지만, 먼 곳에서조차 찾아오는 고마운 분들이 있어 천직이라 여기며 즐겁게 일하고 있지요.”
이문동 지금 자리에서만 20여 년, 과거 그 인근 길에서 한 5년 그리고 큰길가에서 10여 년 모두 합하여 35년 여 구두를 고치고 있어서일까? 인근의 단골손님만 있는 게 아니라 제주, 청주, 광주,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구두를 고치러 오는 손님이 있다고 기분 좋게 말하는 아저씨.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은 구두나 가방을 고치고 가는 게 아니라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가정상담을 하게 되기도 하고, 때론 연애상담도 한다. 그럼 또 그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외대나 경희대생들에게 물어서 찾아와 상담을 청하기도 한다고.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신발을 잘 고칠 수 있냐”고 묻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가진 예쁜 구슬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구슬이 깨어졌을 때 깨진 구슬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일러주는 동화 속 ‘신기료 아저씨’처럼 세상살이의 진리를 깨우쳐 주기 때문일까? 당신에게 나름의 인생 상담을 하고 처방을 받아간 이들이 잘 해결되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올 때가 자신이 고쳐준 구두를 신고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람 있다고 말하는 조효선 씨. 마치 세상의 아픔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편안한 아저씨 때문일까? 오늘도 한쪽 팔이 없으신 팔십 넘은 할아버지를 면도 해드렸다면서 나이 칠순의 할아버지 서너 분과 할머니 한 분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어느새 온갖 연장과 재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무채색의 작은 공간에 환한 웃음과 따뜻한 기운이 넘쳐났다. 다섯 평의 작은 공간에 다사로운 평화가 내려앉아 있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삶속에서 우리는 너도나도 깨진 구슬을 사랑할 줄 모르는 마음처럼 쓰던 물건을 버리는데 익숙해져간다. 때론 물건뿐 아니라 사랑과 우정, 믿음까지도 쉽게 져버린다. 이런 시대에 헌 신발을 꿰매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는 신기료 아저씨는 진정 우리가 지키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무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행복나침반이다.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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