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진작가 강운구

2me4you 2008. 11. 5. 19:08

익숙함 속에 담담한 긍정을 담아내는

사진작가 강운구


강운구는 사진가다. 그것도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유명한 사진가다. 그러나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무면허사진작가라 칭한다. 아마추어로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을 찍었지만 본격적인 사진가로 활동한 것은 대학 3학년 때다. 당시 전국대학생사진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학생신분으로 ‘대구사우회’라는 모임에 들어가면서부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66년 조선일보 사진기자가 된 후 1975년 동아일보를 그만두기까지 10년 동안 사진기자로 살았다. 그 후 지금까지 곁길로 세지 않고 30년 넘게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주의 사진작가 1세대로 꼽히는 사람이다.

강운구는 글을 쓰는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1983년부터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에 장장 11년간이나 글과 사진을 연재한 포토저널리스트다. 사진가가 사진을 잘 찍는 것으로 모자라 글까지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농담처럼 “일종의 불공정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사저널》에 2년여 연재한 내용을 《시간의 빛》이라는 단행본을 엮어 내기도 했으며, 얼마 전에는 《자연기행》이라는 산문집을 낼 만큼 글을 쓰는 작가들마저도 부러워하는 문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놀랍게도 첫 개인전은 사진을 시작한지 30년이 지난 1994년(우연 또는 필연)에 와서야 열었다. 스스로 훈장을 달기 싫어 불러줄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덕분에 그의 전시회는 그의 사진만큼이나 긴 호흡을 가지고 간다. 시간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기획에 충실한 전시, 쏟아 부을 만큼 모이지 않으면 내보이지도 않는다는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지에 게재하는 그의 사진과 글을 보는 것 외에 전시장에서 직접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않다. 그 흔치않은 자리가 지금 한미사진미술관(12월 6일까지)에 마련되어 있다. 엄청난 관람객이 찾아와 화제가 되었던 전시 <마을 삼부작>(2001년) 이후 7년 만이라는 그의 네 번째 사진전 <저녁에>. ‘흙과 땅’, ‘연속사진’, ‘그림자’라는 삼부작의 사진들로 모두 113점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의 특성과 흐름, 사진의 크기에 따라 작가가 관람자의 동선까지 고려해서 주문을 걸듯 배치해 두었다는 사진들을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서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저녁에>라는 이름처럼이나 긴 여운이 남는 다는 것. 개인적으로 특히 소금창고에 앉아있던 염부꾼의 얼굴이 오래도록 눈앞에 아른거렸다. 뭐랄까, 담담한 그 얼굴 안에 삶의 모든 감정이 다 스며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무수히 많은 감정과 얼굴들이 사진 속 피사체의 얼굴에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림자를 불러들인 사진들을 볼 때는 그림자가 피사체나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흙과 땅, 연속사진이라는 주제는 그가 이전에도 계속 해온 작업이었지만 그림자는 무언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자기 사진에 자기 그림자가 안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쓴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상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고 우기지 않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좋다는 생각… 그래서 과감히 그림자를 사진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공교롭게도 포스터의 사진 같은 경우는 피사체의 손 모양과 사진을 찍기 위해 손을 모으고 있는 제 손의 위치가 그림자 안이지만 같이 겹쳐있지요. 그것이 묘하게 하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평생 사진 작업을 해오면서 늘 대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온 그이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고. 그때마다 작가로서의 면역체계가 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자신의 감성이 무뎌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외적인 면을 넘어서 내적인 부분을 담으려 노력한다는 강운구. 스스로를 작가라 자부하는 사람답게 작업과정 또한 치열하다. 인화작업이 따로 필요 없는 디지털사진이 난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쉽게 따라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사진 속 풍경들처럼 그의 작품세계도 더욱 깊어져 간다는 뜻이리라.

강운구는 아마추어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고교시절부터 스스로를 작가라 여겼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름지기 작가란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반세기 동안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

전시회 이름을 <저녁에>라고 지은 이유를 물었다. “저녁에 찍은 사진들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시간적인 이미지보다 여러 이미지가 교차하며 이루는 시간을 뜻하기도 하고, 어느덧 나 자신도 저녁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던가. 감히 말한다, 노을은 저녁이 되어서야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고.

 

한해를 마감하는 이 때, 저녁노을처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맛보고 싶다면, 익숙하지만 담담한 작가의 긍정어린 시선이 담긴 작품을 전시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