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기억을 불러다준 소리
얼마 전 친구에게서 온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으려니 마치 먼 기억을 불러오듯 수화기 저편에서 툭툭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친구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던 것이었어요. 그러자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가 갑자기 몇 배로 더 반갑게 느껴지더군요. 이상하게 묘한 감정의 일렁임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추운 겨울 날 손이 시려 호호 입김을 불면서 공중전화박스에 동전을 집어넣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앞사람의 긴 통화에 짜증 섞인 눈총을 주던 일도 생각나고요. 지금 공중전화 요금이 얼마인지는 가물가물 합니다만 저는 10원짜리 동전 두 개만 있으면 연인과 3분 데이트가 가능했던 시절을 건너왔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그 시절의 공중전화는 가난한 연인들의 밀회장소이자 약속장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만남의 매개체였었죠. 주머니가 가벼웠던 친구들은 어쩌다 운 좋게 동전이 남아 있는 공중전화를 보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바빴습니다. 당시엔 공중전화 앞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전화를 걸기위해 동전을 바꾸러 들어간 가게에서 미안한 마음에 껌이라도 사들고 나오는 일도 많았고요. 본격적으로 DDD가 보급된 시기도 그 즈음이었으니 이때가 바로 공중전화의 전성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 공중전화 카드로 전화를 걸었다는 친구는 뒷사람이 없어서 아주 느긋하게 전화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엔 다들 핸드폰이란 게 있으니 공중전화를 찾을 일이 없으니까요. 오래전 남들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때 이사 간 친구의 집을 찾느라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느라 고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후 친구에게 공중전화도 없는 동네로 이사를 왔냐고 푸념을 하니까 친구가 그러더군요. 사람들이 다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불편 없이 잘 찾아 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영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마치 휴대전화가 보급되었으니 이젠 주택가에 공중전화가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여서 말이지요. 이때가 공중전화 요금이 50원 하던 때로 90년대 후반이었으니 벌써 10년 전 이야기네요. 한때 56만대를 치닫던 공중전화는 휴대전화의 강세에 밀려 매년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그 옛날 화려했던 전성기는 아니더라도, 공중전화가 주차공간에 밀려 아파트 단지에서마저 사라지는 서글픈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제게 향수를 불러다준 친구처럼 문득 보고픈 친구에게 핸드폰 아닌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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