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틀면 온통 어린이 성추행범 사건과 음식물에서 나온 이물질 소식을 빼면 뉴스거리가 없는 것처럼 세상을 시끄럽게 해 정신이 산란할 무렵 오랜만에 신문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어느 이름 없는 할머니가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써 달라며 연세대에 1억을 기부하고 갔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훈훈한 미담기사이긴 하지만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할머니들의 사연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며 눈시울이 시큰해졌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이 감사의 편지라도 보낼 수 있게 주소만이라도 알려 달라”는 말에 “없는 살림에 자식들 공부는커녕 밥도 제대로 못 먹여 키웠는데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이름을 밝힐 수가 있겠냐”고 하셨다는 분. 할머니의 그 한마디에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한 여인의 삶이, 미처 말로 다 못할 심정이 제 머리와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오더군요. 그러다 초라한 행색을 한 할머니가 큰돈을 내놓자 당황하는 학교직원들에게 “평생 식당해서 모은 돈에 살던 곳이 재개발돼 나온 토지보상금을 보탠 깨끗한 돈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는 내용을 보곤 다시 미소가 번져 순간 지하철에서 혼자 울다가 웃다가 하는 바보가 되었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대단한 기업가가 아니라 이런 할머니들이 이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하셨지만 평생 모은 1억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신 김군자 할머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로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신 유양선 할머니, 아구찜 식당을 하며 번 돈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아산병원에 기탁하신 욕쟁이 김공순 할머니, 40년 간 포목상을 하며 번 돈을 적십자사에 내 놓으신 권선애 할머니, 기초생활수급자로 매월 나라에서 35만 원 씩 받아 생활하면서도 허드렛일이나 폐지를 주워서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면사무소에 기탁하고 돌아가신 박순례 할머니 등…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정도니 하나하나 꼽자면 셀 수도 없을 것 같네요. 어려웠던 사람이 없는 사람 심정을 안다고 이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힘들고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스스로에겐 단돈 100원도 허투루 쓰지 않지만 좋은 일을 하고자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돈을 내 놓으신 것이지요. 그 깊고도 넓은 마음과 높은 정신을 생각하니 그 어떤 책보다 큰 울림이 옵니다. 이 분들의 이런 고귀한 마음과 정신을 저도 닮고 배우고 싶습니다.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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