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더아모의 집> 송상호·강명희 부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같기道’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장죽리. 지금 <더아모의 집>이 있는 곳이다. 지난겨울 일죽면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임’이란 뜻이 담겨 있는 <더아모의 집>의 집은, 번듯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간판 하나 없다. 드러난 외양으로만 보면 그냥 그저 그런 부부가 살고 있는 시골집이다. ‘그럼 <더아모의 집>이 뭘 하는 곳이냐?’ 이런 궁금증이 당연히 일 것이다. 송상호 씨의 표현을 빌면 요즘 한창 뜨는 개그코너 제목처럼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같기道’다.
<더아모의 집>은 흔히 생각하는 수용시설도 아니고 조직적인 자원봉사센터도 아니다. 청소년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도 아니다. 그렇다고 종교단체의 선교활동 기관도 아니고 전문적인 외국인 상담센터도 아니다. 특별하게 의도된 공동체도 아니며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도와주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더아모의 집>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 나누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수용시설은 아니지만 손닿는 곳에 있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나 독거노인을 돌보기도 하고, 공부방은 아니지만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들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때론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며, 목사가 살고 있긴 하나 교회 십자가 하나 없이, 그저 이웃 주민들과 함께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송상호 와 강명희 부부가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는 곳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이들은 <더아모의 집>이라는 이름 아래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일죽에서의 뼈아픈 시련
사실 송상호 씨는 목사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5년 동안 전도사 생활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참뜻은 섬김과 나눔이라 믿고, 2001년 1월 부산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안성시 일죽면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다아모의 집>을 열고 부인 강명희 씨와 함께 지역 주민들을 섬기고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 혼자 사시는 노인들에게 반찬도 전해주고, 머리도 깎아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렸다. 어디든 필요하다고 손 내밀면 주저 않고 달려갔다. 처음에는 마을에 목사가 와서 교회를 만들려나 보다 하고 보는 이도 있었지만, 그런 시선을 뒤로 하고 묵묵히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에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하나 둘 찾아들었고, <더아모의 집>은 가진 건 없어도 사람 사는 훈기를 더해갔다.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넉넉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힘들지만 손수 집도 지었다. 그런데 집 하나 짓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돈이 생기면 짓다가 없으면 멈추기를 반복했으니 어련하겠는가. 과연 집이 완성될까 싶었으나 14개월이 지나니 제법 모습이 갖춰졌고, 마침내 2005년 6월 꽤 근사한 집을 완공했다. 비록 50평정도 되는 조립식 건물이었지만 이들에겐 궁궐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의 10개월 남짓한 생활을 ‘더아모’ 식구들은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빌린 땅에다 지은 집은 땅주인이 바뀌면서 바람 앞에 등불이 되고 말았다. 주인이 건물을 짓는다고 철거를 요구했던 것이다. 땅을 팔라고도 해보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에 관리인의 허락만 믿고 집을 지었던 것이 실수였다. 결국 송 목사는 눈물을 머금고 제 손으로 지은 집을 제 손으로 다시 철거 해야만 했다.
아픔을 딛고 얻은 평화
온갖 정성을 들인 것이기에 마음에 생긴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버리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자신을 잡아 준 것이 부인 강명희 씨였다. “아내가 펑펑 울면서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당신이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데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 편하자고 가족들의 행복을 깰 수는 없더라고요.” 아이들의 학교, 친구 그리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내가 인근의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안성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이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것마저 모두 잃고 나니 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선지 도리어 마음은 편하다는 부부. 지금 사는 집도 아는 분이 무상으로 살게 해준 집이다. 그래도 이들은 행복하다. 송하나(14), 송바다(8) 두 자녀들이 ‘우리집처럼 행복한 집 못 봤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는 이곳으로 일죽에서 아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방학이 되면 이곳은 아이들 소리로 더욱 시끌벅적해지리라.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번거롭지 않느냐고 부인께 물었더니 “집안이 복닥복닥 하다가 조용해지면 더 허전한 걸요.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더 위로가 되었어요.” 한다.
강명희 씨는 안성의료생협 재가 캐어 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도 처음에는 남편이 혼자 사시는 어른들을 만나러 가도 잘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어려운 사람들의 형편을 보게 된 후로 남편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서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살다보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엄청난 역경이 휘몰아 칠 때가 있다. 그럴 때 고난 앞에 영영 무릎을 꿇는 이도 있고, 지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이가 있다. 무릎을 꿇는 이가 못나서도 아니고, 싸워 이겨내는 이가 잘나서도 아니다. 물론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들 옆을 잘 살펴보면 늘 그를 믿어 주고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을 함께 발맞춰 가는 사람, 멀리서라도 응원하며 지켜봐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는다. 그 사람이 알던 모르던, 자신을 믿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송상호·강명희 부부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분명 축복받은 이들이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세상 누구보다도 마음부자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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