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혜학교 1호 대학생

2me4you 2007. 12. 13. 15:22
 자혜학교 1호 대학생

‘젊은 느티나무’ 김유진 군


얼마 전,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 절단증’을 가진 《오체불만족자》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초등학교 상근교사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뒤 해맑게 웃으며 학생들과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신문에서 보면서, 정신지체학생을 교육하는 자혜학교에서 34년 만에 1호 대학생을 배출했다는 뜻 깊은 기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먼 일본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자신 앞에 펼쳐진 새로운 환경을 꿋꿋이 헤쳐 나가고 있을 청년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홧홧해져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녹음이 짙어가는 이 계절에 어느새 성큼 자라있을 ‘젊은 느티나무’ 김유진(20) 군을 만나러 갔다. 


순도 100%의 순수 청년

장애인의 날 행사가 있던 자혜학교 강당. 졸업생의 몸으로 장학금을 받아 든 유진 군은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상기된 목소리로 “만족합니다”라는 단 한마디로, 일순 식장 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껏 그 어떤 배우도 이토록 자신의 심중을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교감선생님의 ‘소감 한마디만 하라’는 갑작스런 청을 받고 예고 없이 마이크를 받아든 그는, 정말 딱 한마디만 하고 웃으면서 마이크를 넘겼다. 선생님께서 좀 황망해 하자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 싶은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처럼 순도 100%인 이 청년은 평택에 있는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의 컴퓨터영상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새내기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농담을 던졌다가 무색함을 당했다. 함께 오신 유진 군의 어머니께서 웃음 지으며 “유진이에겐 농담이 잘 안통할거예요” 하셨다. 그런데 처음엔 제법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별 할 말이 없다던 이 순수 청년은 좋아하는 것들을 묻기 시작하자 끊임없는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내가 못 알아듣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직접 써 주기까지 했다. 자혜학교 1호 대학생이라고 알려진 세간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던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 하는 영웅을 물으니 자신은 영웅보다 역사 속의 인물이 더 좋다고 했다. 고3 담임이셨던 조귀영 선생님께서 “유진이는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동서양의 세계사도 주르륵 꾀고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마음의 고향 자혜학교

제일 기뻤던 날이 언제냐는 물음에 대학 합격소식을 들은 날이 아니라 자혜학교에 들어오던 날이라고 해 의아했는데, 듣고 나니 금방 내 생각이 짧았음을 알았다. 그에게 모교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정이 듬뿍 든 고마운 선생님들을 비롯해 학교 곳곳의 시설물 하나하나 추억이 서리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 특히나 애착이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정자가 있는 데라며 앞서 그곳으로 안내했다. 정자 앞의 작은 연못을 가리키고는 예전에는 없던 것이라며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 앞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기에 사진촬영을 위해 멋지게 모델처럼 폼을 잡아보라고 하니 어색해 하면서도 “이렇게요, 이렇게요” 하면서 망설이지 않았다. 역시 싱그러움이 물씬 피어오르는 20대다. 친구들과 함께 손도장을 찍어서 완성시킨 벽화 앞에서 자신의 손도장을 가르쳐 주며 즐거워했고,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직업재활센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뛰어갔던 유진. 정이 듬뿍 든 모교를 떠난 느낌이 어떠냐고 하니 자주 놀러오면 된다고 하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자랑을 서슴없이 내 놓았다.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잘 어울리며, 장벽 없는 건축 설계를 지향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곳이란다. 학생들이 생활하는 강의실, 도서관, 화장실 등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어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며 벌써부터 자긍심이 대단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해 가는 그의 모습이 느껴져 햇살에 반짝이는 느티나무처럼 푸르게 보였다.  


파랑을 닮은 젊은 느티나무

장애인 정보검색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경력을 인정받아 이 대학 컴퓨터 영상디자인과에 합격한 유진은 판타지 소설과 역사책을 좋아하고, 어렸을 적 몸이 안 좋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먹어버릇한 보신탕은 좋아하면서도 무가 들어간 요리는 싫어하는 귀여운 투정쟁이다. 또한 요즘 젊은이답게 취미이자 특기가 인터넷 정보검색과 블로그 운영이지만 상대 블로그에 댓글을 달 때는 존중심을 가지고 달아야 한다고 준엄하게 말하는 건실한 청년이기도 하다. 매일 쌓이고 쌓이는 과제로 힘이 들지만 그래도 민박집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며 노래를 실컷 불렀던 MT 때의 즐거운 기억으로, 화성 집에서 평택 학교까지의 통학 길을 즐겁게 다니고 있는 풋풋한 새내기 김유진 군. 3시간 남짓 만나본 이 청년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그의 블로그에 색과 사람을 연결시켜 놓은 글이 있어, 내가 자신을 색으로 표현하면 무슨 색 같냐고 하니 서슴없이 파란색을 꼽았다. 블로그에 있는 표현을 그대로 빌려, “파랑색과 관계를 가진 사람은 슬픈 과거를 가진 이가 있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면서도 남을 골탕 먹이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쿨 한 면을 가지면서도 냉정한 성격을 가진 타입 등이 존재한다”는데 맞느냐고 하니 그런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유진이의 밝고 순수한 이면 안에는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내는 애잔한 슬픔이 배어있다. 그는 지금도 자신과 달리 고교시절까지 영어를 죽도록 공부해 온 친구들과 나란히 영어실력도 겨뤄야 하고,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업방식에 적응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애써준 가족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잘 알기에 앞으로의 일이 두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과 관계된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것입니다. 우선은 졸업을 위해 학점을 따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으니 그가 한 대답이다. 뒤이어 열차 여행을 많이 해보고 싶은데, 서민적인 무궁화 열차가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우리나라의 철도 정책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흔히들 밝은 사람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밝기만 하면 그다지 매력을 끌지 못한다. 밝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사람, 밝으면서도 순수한 사람, 밝으면서도 맑은 사람 등… 밝음은 필수고 나머지 요소를 더 첨가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떫디떫은 감일수록 더욱 달디 단 홍시가 된다는 자연의 이치처럼, 앞으로 유진 군은 이런 매력을 간직한 사회인으로 거듭 성장해 갈 것이다. 세상 속에서 도전과 모험을 하면서 하루하루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해 갈 유진군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고 또 빈다.

 

 

 <장학금 전달식이 있던 날,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유진 군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벽화 앞에서 자신이

  찍은 자리를 찾아 손을 대고 있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과 신명으로의 초대  (0) 2007.12.14
희망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0) 2007.12.13
자격증의 달인  (0) 2007.12.13
<더아모의 집> 송상호·강명희 부부  (0) 2007.12.13
마음을 저금하는 <노란 우체통>  (0) 200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