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흥과 신명으로의 초대

2me4you 2007. 12. 14. 12:05
흥과 신명으로의 초대

작은소리학교 한선모 이사장


불과 5,60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은 함께 어울려 노는 법을 잘 알았다. 마을잔치나 장터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신명나는 굿이 벌어졌고, 너나없이 함께 어울려 장단 을 맞추고 어깨춤을 추며 흥겹게 삶의 애환을 씻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구음으로써 자신의 신세나 처지를 읊조리며 삶의 시름을 달래기도 했었다. 그런데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소중한 우리문화유산들은 외세에 의해 혹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억압되고 천시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둘 사라져갔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멀어져간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자 흥과 신명을 살리는 길을 걸어온 분이 있어 만나보았다.     


전통문화예술의 도량

작은소리학교는 사라져가는 우리전통문화예술을 생활 속에서 즐기며 이어가자는 뜻으로 설립된 곳으로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은평구 진관외동에 있었으나 은평뉴타운이 발표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며 8년 넘게 가꾸어 온 터전이 안타깝게도 개발의 힘에 밀려나면서 2006년 1월 정든 곳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에서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축제, 마을굿 만들기 본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 대동제인 지신밟기도 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풍물강좌는 물론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세계무형문화재에 오른 분을 비롯한 각 분야의 명인들에게 다양한 우리문화를 접하게 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값진 기회의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봄부터 가을까지는 대학로 곳곳에서 <미친듯이 노는 청소년 문화예술展>이라는 흥겨운 판을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벌이기도 했다. 서울시에서 지원한 청소년문화사업의 하나인 ‘대학로청소년문화존’을 기획하고 주관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한결같이 우리전통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찾아 전하는 일에 애써온 결과 비로소 전통문화예술의 도량으로서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재조명하고 발굴하는 진지한 노력

지금도 전통문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자리가 있다면 어디건 달려가 필요한 자료를 모은다는 한선모 씨. 그가 바로 이 작은소리학교를 만든 사람이자 이곳을 지키고 있는 큰 기둥이다.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우리전통문화의 원류는 모두 굿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굿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구경하는 마을 굿과 무당이 하는 굿 모두를 일컫는다. “우리전통문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바로 ‘굿’이라고 봅니다. 굿판을 보면 춤, 소리, 연주, 풍물, 의식, 위로, 놀이, 대동성 등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굿이 축제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전통예술과 공연예술은 거의 굿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굿을 문화가 아닌 종교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어디 굿뿐인가? 정선아리랑 중에 아들 딸 낳게 해달라고 비는 대목이 있는데 그 가사 하나 때문에 미신숭배라고 아이에게 민요를 못 가르치겠다고 한 부모님도 있었다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들으니 우리의 것을 무속신앙이나 미신이 아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작곡가 윤이상 선생도 루이제린저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는 통영 앞바다에서 펼쳐지던 별신굿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굿’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과 더불어 이곳에서 또 힘쓰고 있는 일이 바로 우리 전통문화 속의 ‘잡색’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연희방식의 하나인 잡색은 놀이판을 더욱 흥겹고 재미나게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판의 정식 구성원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등장해 익살스러운 춤과 특유의 재담으로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놀이판에 있어서 잡색은 판이 돌아가는 전체 흐름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진짜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빛이 나지요. 사람들을 얼마나 잘 놀게 하는지는 잡색을 하는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있으니까요.” 뜻을 알고 보니 ‘잡색’이란 말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간관계에서도 사람들을 함께 어울리게 하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혼자서 잘 노는 사람보다 더 인기가 있지 않은가? 너나없이 주인공만 하려고 하는 요즘 세상에 아이들이 잡색을 배우다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가는 인생 공부가 되기도 할 것 같아 의미 있게 느껴졌다.



첼로를 전공한 한국학생이 음대로 유명한 줄리아드대학에 면접을 보러갔다. 면접관이 자기 나라 악기 중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첼로 말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을 떠올리니 모두 서양악기여서 다른 학생들과 달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1년 후 가야금을 배워 다시 그 학교에 들어갔다는 웃지 못 할 실화다. 우리의 문화사대주의를 돌아보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다. 사는 동안 악기 하나 다룰 줄 알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 진다는 말이 있다.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된다는 뜻이리라. 희망찬 새해, 이왕이면 세계 속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우리전통문화를 작은소리학교와 같은 곳에서 한 가지씩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작은소리학교(Tel 02-736-5280)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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