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문화전도사 -가일미술관 큐레이터 홍성미 씨

2me4you 2008. 1. 9. 14:11
지난 6월과 7월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서 시작된 <희망샘 미니 콘서트>가 양평재활쉼터에서 막을 내렸다. 아홉 번의 콘서트 모두 여성노숙인쉼터, 치매노인요양원, 노숙인지원센터, 장애인 시설 등 평소 쉽게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곳에서 열렸다. ‘신나는 예술여행’의 일환으로 저소득층에게 문화예술 관람기회를 제공하는 지원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홍성미(44) 씨가 기획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미술관 큐레이터다. 큐레이터가 전시가 아닌 공연을 왜 기획하게 되었을까? 두 달간 문화의 사각지대를 찾아가 작지만 따뜻한 콘서트를 무사히 끝낸 그녀를 만나보았다.


함께 즐기는 삶의 양식

<희망샘 미니 콘서트>를 기획할 때 함께 일하는 동료조차 그녀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콘서트가 열리던 때가 미술관의 전시 준비는 물론 전시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까지 준비해야 하는 바쁜 시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미술관이 특정집단에게만 허락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찾아오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생각이 반영되어서일까? 그녀가 몸담고 있는 가일미술관에서는 한 달에 한번 음악회도 열리고 소외계층이나 비도시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희망샘 미니 콘서트>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 매개가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녀에겐 상관이 없었다. 그 공간이 미술관이 아니면 어떤가? 큐레이터가 미술관에만 있으라는 법도, 콘서트를 기획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으니 말이다. 문화가 특정인들의 기호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나누는 양식이 될 때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그녀의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콘서트도 마음이 아픈 분들께 작은 희망의 씨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행복 하고 싶지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해진 사람은 없잖아요.”

한 번이라도 공연의 진한 감동을 느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 편의 좋은 공연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활력을 주는지…. 한 끼의 훌륭한 식사가 육체를 살찌운다면 한편의 좋은 공연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이런 감흥을 함께 나누려고 홍성미 씨는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부득이 문화와 단절되어 있던 사람들의 척박한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뿌리고자 남들보다 이마의 구슬땀을 몇 배로 흘리면서 말이다. 


그간 공연장소 섭외며 연주자 섭외에 진행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하려니 힘든 일도 많았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인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수모를 겪을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첫 곡이 흐를 때 까지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던 자리가 두세 곡의 연주가 이어지면서 어느덧 손장단이 나오고 굳었던 표정이 풀어지고 박수소리에 이어 눈물까지 짓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의 의지는 다시 확고해졌다. 공연이 끝나자 무뚝뚝하게 보이던 어르신이 자신의 손을 꼭 잡으며 얼마 만에 이런 공연을 봤는지 모른다며 내년에도 꼭 와달라는 말을 했을 때는 그간 힘들었던 일들이 눈 녹 듯 사라졌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연주를 보고 가슴 뭉클해 할 때는 짜릿한 보람도 느꼈다.

그렇다. 배고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이겠지만 영혼이 허기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꿈과 희망, 사랑 같은 마음의 양식이다. 그런 마음을 움직이고 어루만져준다면 예술은 영혼을 달래주고 채워주는 훌륭한 친구다.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콘서트 기간 동안 전시회 준비에 학생들을 위한 한지교육프로그램 준비로 직접 한지를 만드는 일까지 배우느라 잠자는 시간은 물론 휴일도 없이 일을 해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 지원을 받아서 어떤 일이든 했겠지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제가 선택되어 기뻤고, 제가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기회가 제게 오면 좋겠어요. 그러나 지원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 콘서트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자원봉사자를 모으더라도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이런 느낌을 나누고 싶어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거든요. 제가 얻은 게 참 많아요.”

살면서 느끼는 가장 큰 축복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것이란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 큐레이터를 하기 전, 그녀는 중학교 교사였고 대학교수였다. 그때도 그 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미술관 큐레이터든 콘서트 기획자든 자신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할 거라는 것. 그러나 바로 그 일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하고 있어서 좋다는 홍성미 씨. 살아가는 동안 마냥 후회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지금의 순간을 완전 연소시키며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든 미련이 남지는 않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진정 자신의 삶과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내 자기 돈 들여서 한 일도 아닌데 이런 자리가 많이 부끄럽다고 했던 사람.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던 벅찬 감격을 잊지 못해 벌써부터 다음 일을 궁리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앞으로 그녀가 기획할 멋진 공연을 보는 듯해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나눔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질이 없으면 나누지 못한다고 여길 때가 많다. TV나 신문에서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살면서 나누는 기쁨을 찾아 이웃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가슴 넓은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마다 내게 없는 것이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인 것 같다. 나 살기조차 바쁜 세상에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진정한 나눔은 물질보다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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