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저금하는 <노란 우체통>
전우명 님의 꿈꾸는 세상
서기 2030년.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를 멸망시키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외계인들. 그들이 지구 침공의 순간, 제일 먼저 공략할 심장부를 정했다는 일급 기밀이 지구방위대의 첩보망에 걸려들었다. 목적지는 바로 해발 1200m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깊은 산골인 봉화군 춘양면! 지구방위대는 곧장 조사를 착수했다. 세계의 하고 많은 나라 중에서 하필이면 왜 대한민국의 오지에 속하는 산골마을을 그들이 노리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얼마 후 지구방위대는 엄청난 비밀을 밝혀냈다. 그것은 바로 지구에 단 한 점의 인간성도 남기지 않기 위한 전략, 바로 ‘인간성말살정책’을 위해 그곳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인적조차 뜸한 외딴 시골마을을 외계인들이 지구의 심장부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06년 12월부터였다.
편지 타입캡슐 <노란우체통>
오래된 장맛이나 묵은 김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숙성시키는 곳이 있다면 어떤 곳일까? 사랑도 인스턴트식이 난무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가슴 깊이 감추고 있는 진정한 마음 하나 건져 올려 묵이고 곰삭혀 둘 수 있는 곳. 상상으로만 가능 했던 이런 곳이 진짜 거짓말처럼 생겨났다. 그것도 태백산 사고史庫와 인접해 있는 봉화의 청정한 산골 마을에!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일이 마비되고,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는 현대인들에게 이 <노란우체통> 소식은 놀라움 그 자체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비통한 심정, 죽어서라도 전하고 싶은 애끓는 마음, 태어날 아기에게 띄우는 한없는 사랑, 영원을 약속하는 뜨거운 우정, 가족들과의 소중한 추억 등등…. 미처 말로 다 전하지 못했던 헤아릴 수 없는 미안함, 고마움, 사랑 등을 고스란히 편지에 담아 원하는 날, 원하는 이에게 배달해 주는 가슴 벅찬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작년 12월 1일. 영화 속에서만 가능했던 이 일들을 눈앞의 현실로 불러들인 사람이 바로 <노란우체통>의 전우명(45) 씨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 꿈같은 일을 시작했을까?
“사람과 사람사이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추억들이 우리들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리고 싶었고요.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잠시라도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노란우체통>을 찾는 사람들이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음으로써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선하게 웃음 짓는 전우명 씨. 불혹이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딱 그 즈음에 누구도 쉬이 흉내 낼 수 없는 인생 계획을 세우고 그 일에 몰두한 것이다.
천천히, 안단테 안단테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문을 연 <노란우체통>은 단숨에 만든 작품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뇌리를 스친 두근거림을 단초로 삼아 3년여 동안 궁글여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노란우체통>이다.
그는 늘상 꿈을 꾼다. 일도 삶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매우 열정적이다. 노란우체통을 구상하고 일을 진행시키고 문을 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뭔가를 이루려고 조급해 하지 않는다. 자신의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기에 한 치의 서두름도 없다. 그래서 지금껏 편지가 얼마나 왔는지, 앞으로 향후 얼마까지 이 일을 할 것인지 하는 질문을 받으면 어느 싯귀처럼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단지 수치에 불과한 그 답을 솔직히 하고 나면 진실로 가벼워지고 사람들이 실망하기 때문이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으니 아직 많은 편지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20년 장기보관을 부탁한 편지가 온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할 계획이냐고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인데 그 누가 앞일을 헤아릴 수 있으랴. 하지만 소중한 마음을 담아 먼 외딴 시골마을까지 찾아오는 발길이 이어져 오고 있으니 앞길에 어찌 불빛이 보이지 않으리. 그러나 사람들이 맡기고 가는 편지가 한낱 종잇조각이 아닌 마음을 저미고 가는 것이기에 그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믿고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의 무게가 천근만근인데 신이 아닌들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으랴. 그럼에도 우매한 기자는 또 묻는다. 생활은 어떠냐고? 그래도 수지타산은 맞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조용히 웃으며 그가 말한다. “살아가는 것은 너무 계산하면 자꾸 더 틀려지는 것 같습니다. 계산보다는 진실이겠지요. 그 다음은 열정입니다.” 어느 도량의 선문답마냥 이뤄진 대화다. 덕분에 설익은 기자, 마음 한자리에 이런 경구를 담고 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정성은 코끼리도 말하게 하며, 열정은 태산도 옮긴다!”
적송의 하나인 춘양목의 주재배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두고 간 마음을 지키며 딱따구리와 인사하는 오롯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전우명 씨. 그러나 그는 행복하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찾아온 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 즐겁고, 자신이 마련해 놓은 작은 공간에 찾아와 행복해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기쁘고, 인생의 많은 잠언을 던져주고 가는 이들이 있어 부족한 자신을 깨우칠 수 있음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서기 2050년. 마침내 봉화의 오지 마을에 외계인이 침투했다. 그러나 지구방위대는 태평세월 바둑판 앞에서 하염없이 세월을 낚고 있을 뿐이다. 왜냐고? 이미 그 곳을 다녀간 수많은 이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셀 수도 없는 <노란우체통>을 열어 마음에 담고 있었으니 자신들이 할 일이 없어졌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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