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만들어 가는 사람 - <한 집 한 그림>의 우흥제
<한 집 한 그림>.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귀가 솔깃했다. 게다가 갤러리나 미술관, 화랑이 아니라 그림을 파는 그림 집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이태원의 다소 외진 골목길에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모습으로 오다가다 누구나 쉽게 들어 갈수 있게 꾸며져 있다니 호기심이 더 갔다. 싸이월드에 있는 greemZip 클럽에 보면 <한 집 한 그림>은 문화아지트라고 소개되어 있다. 미술작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작가들에게는 창조적인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활고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대중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여 부담 없이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곳이란다. 특이할만한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림계라는 것을 한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공간이기에 사람들이 모여 먹자계도 반지계도 아닌 ‘그림계’를 한다는 것일까? 뭔가 색다른 움직임이 일고 있는 듯해 이곳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았다.
우흥제(31) 씨는 그림 보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림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자신이 촌스러워서 그랬는지 그림을 볼 수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들은 어딘지 모르게 편치 않았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어렵고 편하게 가서 구경하기엔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래서 ‘동네 슈퍼나 문방구처럼 그림도 오다가다 들릴 수 있는 곳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가 그런 곳을 만들어보자는 말이 나와 곧장 실행에 옮겨졌다.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찾아와서 그림을 편하게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집에 그림 한 점 씩을 걸어놓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름도 <한 집 한 그림>으로 지었다. 그림 못지않게 여행을 좋아해 대학도 관광과를 갔다는 그는 친구 셋이 함께 여행 한 번 가는 셈치고 시작한 일이 어느 덧 3년이 되었단다.
“지금도 맨 처음 그림을 사간 손님이 기억나요. 편안한 복장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 산책을 나온 분이었는데, 그때의 기분이 얼마나 짜릿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 정말 이렇게도 그림이 팔리는 구나. 우리가 생각한 일이 꿈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신기하기도 하고 신이 나기도 하고요.”
그림 집 문을 열고 처음 6개월 동안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다르게 마음만은 항상 즐거웠다. 단순히 그림을 파는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짧지만 한 달에 한 번 전시도 하고 외부 전시기획도 하고, 작가들의 매니저 역할도 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림계’라는 모임을 통해 선뜻 구입하기 망설여졌던 작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미술뿐 아니라 연극, 음악, 영화, 전시 관람 및 금속공예를 비롯해 생활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즐거웠다. 그래서 처음에 오후 1시에 열었던 오픈 시간도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편하게 올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오후 5시로 바꾸었다.
“처음엔 한 1년 정도 하다가 잘 안 되면 접을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1년을 하다보니까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동안 이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분들 얼굴이 하나 둘 생각나서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만두려고 할 때 그동안 많은 게 쌓였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그는 예술이라는 것이 높은 성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파고들 때 개인의 삶이 더욱 윤택해진다고 믿는다. 예술은 돈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 아닌 세대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삶이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와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면 보람도 느낀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힘든 순간이 어찌 없었겠는가? 뉴스에서는 연일 미술시장이 호황이라는 보도가 나오는데 정작 본인은 호황이라는 걸 한 번도 타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그 놈의 호황이 나만 비켜가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호황을 못 탔을 뿐이지 크게 잘못됐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실력이 없고 못나서가 아니라 호황이라는 시장이 어느 정도 거품일수도 있겠구나. 그러니 거품이 꺼질 때를 준비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지금껏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 왔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광고를 한 적이 없다는 이 작은 공간이 사람들 사이 입에 오르내리고 얼마 전에는 이곳의 ‘그림계’가 공중파 방송의 9시뉴스를 타기도 했다. 거기다 올해 초에는 월간《art》에서 선정한 ‘한국미술의 세대교체를 이끌어나갈 젊은 미술인’으로 당당히 ‘新 한국미술 Power 100인’에 들어가기도 했으니 세간에 어느 정도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광고 한번 하지 않았던 작은 공간이 프랑스까지 소개가 된 적이 있는 걸 보면 이곳을 찾는 분들이 모두 홍보대사를 자처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확실히 개인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걸 느낀다는 우흥제 씨.
greemZip 클럽 게시판에는 “그림 집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사진과 함께 이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림 파는 가게, 다양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곳,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쉼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느낌들을 보면서 이곳이 도시인들의 문화 사랑방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회사생활이 끝나면 행복했지만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하다는 그는 올 8월에 결혼을 한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신부와 합의해 예물도 생략하고 식도 비용이 안 드는 곳에서 하지만 대신 신혼여행으로 한 달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무척 기대된다는 그. 이 일을 하는 내내 마냥 꿈만 꾸는 줄 알고 관망해오던 여자 친구를 곧 이쪽으로 끌어올 생각이라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예술이라고 일컫는 활동들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다른 여타의 분야와 비교해서 절대 우위에 있어서도 안 되지만 절대 하위에 있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으로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 힘쓰고 싶다는 젊은 일꾼 우흥재 씨.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그의 도전과 앞날에 기대와 박수를 보낸다.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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